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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안동을 여행하는 법  |  국내축제뉴스 2021-09-06 17:20:13
작성자   페스티벌올앤트래블 editor@guideme-trip.com 조회  507   |   추천  36

젊은 안동을 여행하는 법

 

                    

안동이 가까워졌다. 800년을 살아온 하회마을과 1000원권 지폐에 박힌 도산서원,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촬영지 만휴정과 고산정, 그리고 어둠이 내리면 더욱 아름다워지는 월영교와 같은 안동의 명소들은 변함이 없지만, 서울 청량리역에서 KTX를 타면 2시간여 만에 닿을 수 있는 그곳은 이전보다 훨씬 친근해진 느낌이다. 안동소주와 안동한우, 안동간고등어까지 ‘안동’이라는 수식이 붙으면 깊이가 더해지는 것처럼 여행의 품격을 한껏 안겨줄 안동에서 21세기 청춘들도 반할 만큼 흥미진진한 여정을 만났다.


세계문화유산이 된 마을
하회마을

                    
 

대대로 풍산 류씨가 살고 있는 하회마을은 언제부터 안동을 대표하는 명소가 된 것일까? 웃는 모습이 인상적인 하회탈로 유명한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흐르다가 이곳에 이르러 마을을 감싸 돌며 흐른다고 해서 ‘하회(河回)’라는 지명이 붙었다. 마을을 감싸고 도는 낙동강의 흐름을 확인하고 싶다면 마을에 들어서기 전 먼저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 전체를 둘러보는 것이 좋다. ‘연꽃을 내려다보는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부용대에 오르면 하회마을이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처럼 보인다는데, 마을을 휘감아 도는 낙동강과 하회미을 앞을 지키는 소나무 숲까지 어우러지며 근사한 풍광을 자랑했다.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하회마을은 웅장한 배 모양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예부터 마을 사람들은 마을이 한 척의 커다란 배와 같다고 믿었고, 그 때문에 마을 안에 깊은 우물을 뚫거나 무거운 돌담을 쌓지 않았다고 한다.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하회마을에 들어서면 국가 보물로 지정된 입암고택과 충효당을 비롯해 황경당, 남촌댁 등의 운치 있는 고택들과 수령이 600년이 넘는 느티나무 삼신당, 그리고 1999년 영국의 엘리자베스2세 여왕과 2019년 앤드루 왕자의 방문을 기념해 조성된 더 로열 웨이(The Royal Way)까지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 왜란과 호란, 6·25와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겪으면서도 조선 전기부터 유지해온 품격 있는 건축물과 하회별신굿탈놀이, 선유줄불놀이 등의 민속 문화가 그대로 남아 있는 하회마을이 21세기에도 안동의 대표 여행지로 손꼽히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의해 우물이 3개나 파였지만 모두 메웠고, 일부 고택에서 보수를 하며 돌담을 올리기도 했지만 최근 다시 본연의 흙담으로 복원중이라는 하회마을에는 오늘도 120가구의 주민 290여 명이 멋스러운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홈페이지 www.hahoe.or.kr
주    소 안동시 풍천면 하회종가길 2-1
전    화 054-853-0109 
운영시간 09:00~18:00
입 장 료 어른 5,000원, 청소년 2,500원

 

 

1000원권 지폐의 미덕
도산서원

                    
 

1000원권 지폐를 잠시 들여다보자. 앞면에는 조선시대 문신이자 유학자 퇴계 이황의 초상과 함께 그가 애정했던 매화가 그려져 있고, 뒷면엔 도산서당을 그린 정선의 〈계상정거도〉가 담겨 있다. 1975년 1000원권 지폐가 처음 발행됐을 때는 오늘날과 거의 흡사한 도산서원 전경이 담겼는데, 2007년 지폐가 리뉴얼되면서 의미를 더하기 위해 옛 그림이 자리를 잡았다. 청렴하고 강직한 이황 선생의 뜻과 그가 세운 인성 교육의 현장 도산서당의 의미와 가치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1000원권 지폐를 통해 널리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은 도산서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하며 학문 연구와 인격을 수양했는데,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많은 문인들이 서당 자리에 서원을 추가해 건립했다. 서원은 1576년 완공됐고, 선조가 ‘도산서원(陶山書院)’이라는 현판을 내렸다.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존경받는 퇴계 선생은 약 400종에 달하는 40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는데, 유물전시관 영모각에서 그 자취를 훑어볼 수 있다.

 

홈페이지 www.andong.go.kr/dosanseowon
주    소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전    화 054-840-6576 
운영시간 09:00~18:00
입 장 료 일반 1,500원, 청소년 700원 주차 대형 4,000원

 


고요한 낭만
고산정

                    
 

“단지 나의 낭만은 독일제 총구 안에 있을 뿐이오. 혹시 아오. 내가 그날 밤 귀하에게 들킨 게 내 낭만이었을지.” 고운 한복 자태를 드러내며 나룻배에 앉은 고애신의 덤덤한 말에 노를 젓던 유진초이가 손을 놓고 대꾸한다. “조선 최대 사대부 아가씨가 하기엔 과격한 낭만인 거 같은데….”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이다. 묘한 감정이 오가던 그 장면에서 배경으로 등장한 곳이 바로 고산정(孤山亭)이었다.
고산정은 조선시대 퇴계의 제자였던 금난수 선생이 지어 학문과 경전을 가까이했다고 전하는 세 칸짜리 정자다. 낙동강 상류가 흐르는 기암절벽 가송협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데다가 외병산과 내병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고 더욱 절경을 이루는데, 사실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촬영 이전까지는 안동에서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던 개인 사유지다. 여전히 관광지 분위기는 나지 않아 오히려 순수한 매력을 발산하던 고산정 앞마당엔 소나무 한 그루와 함께 분홍빛 상사화가 가득했다.

 

주    소 안동시 도산면 가송길 177-42 
입 장 료 없음

 


합시다, 러브… 나랑 같이
만휴정

                    
 

길안면 묵계리에서 10분가량 걸어 들어가야 하는 숲속에 자리한 조선시대 누각 앞에 언젠가부터 젊은 연인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만휴정(晩休亭)은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어쩌면 가장 로맨틱한 장면에 등장하면서 드라마 종영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이가 찾는 안동의 핫플레이스가 되었다.
“러브가 무엇이오? 나랑 같이하지 않겠소?” 영어를 잘 모르던 사대부 애기씨 고애신의 순수한 질문에 미국에서 온 유진초이가 손을 맞잡으며 낮은 목소리로 답변한다. “합시다, 러브… 나랑 같이.” 드라마의 명장면을 추억하려는 여행자들은 생각보다 많은데, 덕분에 묵계리 초입에는 잘 정돈된 무료 주차장과 방역 수칙을 확인하는 관리소도 생겼다. 그리고 만휴정 앞 나무다리는 평일 낮에도 순서를 기다리며 줄을 서야 건널 수 있다.
만휴정은 조선시대 문신 김계행이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 연산군의 폭정이 심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 땅으로 낙향해 만년을 보내기 위해 만든 정자였다. ‘우리 집에는 보물이 없지만, 보물로 여기는 것은 청렴과 결백이네.’ 청백리로 알려진 김계행이 읊었다는 시 구절이 인상적인데, 소박하지만 주변 자연경관과 어우러지면서 수려한 면모를 과시한다. 정면 세 칸 중 가운데 칸은 누마루 형식으로 개방되어 오늘날에도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에 더없이 좋다. 학문을 익히던 양쪽 방은 온돌 형태다. 정자 아래 개울이 흐르는 커다란 바위에는 한자로 ‘보백당만휴정천석’이라 새겨져 있는데, 말년에 쉬는 정자와 산수의 경치라는 의미다. 만휴정이라는 이름도 여기서 따온 것. 바위가 무척 미끄럽고 산기슭이 가파르므로 ‘인생샷’을 찍을 때 안전에 유의하는 것이 좋겠다.

 

주    소 안동시 길안면 묵계리 1081 
전    화 054-856-3013
입 장 료 없음

 

 

달빛에 물든 사랑을 찾아
월영교

                    
 

너른 호수를 가로지르는 길고 긴 다리는 낮에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어둠이 내려앉으면서 애달픈 사연과 만나 더욱 몽환적인 빛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보조댐 아래 생긴 안동호를 지그재그 형태로 수놓고 있는 월영교는 길이 387미터, 너비 3.6미터로 사람만 건널 수 있는 목재 인도교다. ‘월영’이라는 이름은 댐 건설로 수몰된 달골마을에서 옮겨온 바위 월영대(月映臺)에서 따왔다.
그런데 다리를 관통하는 모티브는 400여 년 전 한 여인이 남긴 애틋한 사랑 이야기다. 1998년 안동 정상동에서 서른한 살 나이로 세상을 떠난 한 남자의 시신이 발견됐는데, 시신의 머리맡에는 머리카락으로 만든 미투리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남자 미라의 가슴을 덮은 한지에는 편지글이 적혀 있었다.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래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떠나간 남편의 저승길을 위해 제 머리카락을 잘라 신발을 만들고, 마지막 사랑의 편지를 남겼던 여인(원이 엄마)의 마음을 이어주고자 월영교는 다리 한가운데 자리한 팔각정 월영정을 중심으로 양쪽에 미투리가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만들어졌다.
밤이 깊어지면 다리에는 반짝이는 조명이 켜지고, 8시 정각부터 10분 동안 다양한 컬러로 물들며 변하는 분수 조명까지 더해져 분위기를 돋운다. 월영교 주변에는 여러 산책로가 조성되어 자정까지 불을 밝힌 가로등 아래 상쾌한 밤 산책을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호숫가에 조성되어 있는 개목나루에서는 옛 나룻배를 연상시키는 황포돛배와 초승달 모양으로 빛을 발하는 ‘문보트’도 운행중이니 유유자적 로맨틱한 물놀이에 나서 보는 것도 좋겠다.

 

주    소 안동시 상아동 569

전    화 054-821-0649

 


마을을 뒤덮은 예술
예끼마을

                    
 

한때 안동에서 가장 상권이 발전한 마을 중 하나가 예안마을이었지만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인해 수몰되면서 당연히 그 이주민이 정착한 마을조차 경제적으로 쇠락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 주민들은 여전히 예안마을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후미진 이주민 마을은 2015년 아티스트 한젬마가 참여해 예술마을 조성사업이 진행되면서 ‘예술에 끼가 있다’는 의미를 가진 예끼마을로 재탄생했다. 마을 담장엔 눈길을 사로잡을 뿐 아니라 의미도 남다른 벽화가 그려졌고, 한옥 갤러리와 작가들의 화실, 공방, 한옥 카페 등이 문을 열었다.

 

주    소 안동시 도산면 선성길 14
전    화 054-841-5800

 


고택의 깊은 밤
치암고택

                    
 

안동에는 한옥스테이가 유독 많은데, 한옥 자체가 문화재로 지정된 곳은 흔하다고 할 수 없다. 문화재로 문화·역사적 가치까지 인정받은 치암고택은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하자 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와병중에 세상을 떠난 치암 이만현 선생의 고택으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로부터 ‘명품고택’ 인증까지 받은 단아한 한옥이다. 조선시대 지어진 ‘ㅁ’자형 22칸의 고택은 안채 지붕보다 사랑채 지붕이 높은 것이 특색이다. 대청마루에 앉아 안주인이 내준 차 한잔을 하고 있자니 아득한 시간 여행을 떠나온 듯했다. 달빛 아래 참매미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번지고 짙은 나무 내음이 밤을 가득 채우는 고즈넉한 한옥에서는 매화 모양을 낸 떡과 달콤한 다식을 만드는 다과 체험을 반드시 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주    소 안동시 안막동 119-1
전    화 054-858-4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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